오아시스는 나에게 꽤나 각별한 밴드였다. 지금의 음악 취향은 대부분 군대 시절에 만들어졌는데, 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게 오아시스였다. 특히 Familiar to Millions 라이브 앨범을 통으로 들으면서 그들의 공연을 계속 머릿속으로 계속 상상했던 것 같다. 알라딘에서 펀딩하는 책을 사서 읽어보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소닉을 결제해서 보기도 했다. 이정도면 2020년대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거 아닌가.
십몇 년 기다린 아저씨들에 비하면 뉴비지만, 그동안 내가 이룬 것. 노엘 하플버 내한공연 2회, 네이버 블로그에서 오아시스 얘기하기 12회, 밴드 동아리에서 선곡할때 오아시스 꺼냈다가 거절당하기 3478296회.


그 오아시스가 재결합을 했고, 티켓팅을 성공해버렸다. “해버렸다” 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장장 여덟시간에 걸쳐서 큐를 기다리고, 입장하고, 매진소식에 절망하고 있을 때 ‘인디멘드 티켓’ 이라는게 갑자기 떴다. PRICE 란에서 이상한 숫자를 본것 같지만 어..어..! 하면서 그냥 예매를 눌러버렸다. 인디멘드 티켓이 뭐냐면, 예매 수요가 확 몰리면 판매처(우리나라로 치면 인터파크 티켓)가 직접 플미 붙여서 파는 티켓(럭키 암표)이라 생각하면 된다.
나름 전략이 있었다. 애든버러와 더블린은 비행 동선 상 제외. 마음 같아서는 카디프 첫공을 가고 싶었지만 티켓팅이 어려울 것 같아 패스. 런던은 왠지 영국과 유럽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시도할 것 같아서 패스. 내 선택은 맨체스터의 공연 5회 중에서 가장 애매하게 가운데 껴있는 수요일 공연이었다.

막상 티켓팅에 성공하고 나서는 두어 달 동안 고민했다. 이듬해 10월에 내한도 한다는데 굳이 영국까지 가야될까 싶었다. 그래도 살면서 한 번은 정신 나간 짓을 “굳이” 하고 싶었다. 11월이 돼서야 비행기를 끊었다.
혼자 가는 여행, 파리로 들어가 런던에서 나오는 8박9일 일정이었다. 7월 16일 공연을 가운데에 두고 전후로 일정을 짜는게 어려웠다. 주말을 어떻게 잘 끼워넣는다면 다른 나라도 가볼 수 있을텐데. 이탈리아, 파리… 캘린더에서 날짜를 이리저리 붙여보았다. 그래도 에펠탑 한 번은 봐야하지 않나. 그렇게 일주일과 하루 연차를 냈다.
남은 것들을 정해서 예매하기까지는 몇달이 걸렸다. 계획은 거의 세우지 않았다. 둘째날 점심에 먹을 식당과 루브르 박물관 오픈런, 딱 두개 미리 해놓았다. 버스와 기차를 제외하고 대략 320만 원. 비행기는 3개월 할부. 이제는 무르기 없다.
- ✈️ 아시아나 (ICN ↔ CDG) / 152만 원
- 🛌 파리 호텔 / 38만 원 (4박)
- ✈️ 이지젯 (CDG → MAN) / 16만 원
- 🛌 리버풀 호텔 / 31만 원 (2박)
- 🛌 런던 한인민박 / 20만 원 (2박)
- 🎸 오아시스 공연 / 63만 원
여행 가기 전날인가 여행 브이로그 보다가 갑자기 너무 설레서 밖으로 나왔다. 집 앞에 뜨레쥬르 가서 스콘을 사왔다. 한국 대기업 빵집에서 파는 스콘도 이렇게 맛있는데, 유럽에서 먹는 빵은 얼마나 맛있을까.
7월 11일 금요일, 인천공항
투 데이 이즈 거너비더데이.. 안 올것 같은 날이 드디어 왔다. 아침에 양재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왔다.

혼자 가는 여행에 친구 데려가는 느낌으로 오즈모 액션5를 샀는데, 의자 오른쪽에 카메라를 놓고 찍고 있는 앵글이다. 카메라에 잘 나오겠다고 몸 앞으로 빼서 앉는 엄마. 떠나기전에 본가에 있던 영양제와 이것저것 건네주려고 일산에서 공항까지 마중 나와줬다.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짤막하게 기도도 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오전 열한시 즈음에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열세시간 비행이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랑 수다를 좀 떨었다. 처음에 뭐 혼자왔냐 누구랑 오셨냐 이런 얘기하다가 가족 얘기까지 조금 들어드렸다. 대충 딸들과 사위들이 다같이 자기랑 같이 여행간다는 이야기였다. 무슨 여행 일정 앱을 사용해서 여행 동선과 일정을 잘 해놨다고 보여주시더라. ‘오오오..!! 따님이 효녀네요’ 세번 남발하고 끝났다.




기내식 모음과 위키드.
쌈밥 → 볶음밥 → 파니니 였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양이 너무 적다. 저녁 때는 모닝빵 하나 더 달라고 해서 열심히 배를 채웠다. 그래도 한식이라 맛있게 먹었다. 작년 여행에서 탔던 카타르 항공 기내식에서는 어떤 음식이든지 똑같은 냄새가 났다. 그 때부터 기내식으로 나오는 볶음밥, 쌈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비행기에서 이런저런 컨텐츠들을 열심히 소비하고 싶었지만.. 자꾸 잠이 왔다. “밥맛, 어쩌구 밥맛~” 장면을 넘기지 못하고 골아떨어졌다. 유튜브에 빠더너스와 파리 여행 브이로그 몇개 저장해 놓은것도 봤다. 그 외에는 열심히 오아시스 셋리스트 플리를 돌렸다.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며 Half The World Away를 듣고 있다니.


옆자리 할머니 이심 설정해드렸다. 그러고 나서 다시 수다(자랑) 2차전 시작.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면서 호텔 가는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었는데, 호텔 어디냐 물으시더니 자기네랑 가깝다고 택시 태워주신다고 하셨다. 그치만 여기서 나오는 I 특징 — 안친한 사람과 집 방향 같아서 같이 가는거 힘들어함. 거절은 했지만 짐 찾고 나와서 또 마주쳤는데, “좋은 여행하세요” 하고 가셨다. 덕분에 여행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7월 11일 금요일, 파리!
지금 생각해보면 출발하기 전부터 파리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긴장했었다.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핸드폰이나 카메라를 들고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을 정도. 캐리어를 끌고는 절대 대중교통을 타지 않겠다 다짐하고 나왔다. 한 명이지만 택시를 타기로 했다. 나오자마자 우버를 불렀다.
미리 보았던 블로그에서는 바닥에 TAXI 라고 써있는 길을 따라서 가면 안된다고 나와있었다 (길을 따라가면 공항의 공식 택시 승강장이다. 정찰제로 운영되는데, 우버로 예약하는게 훨씬 저렴했다). 우버 지도에서 핀이 꽂힌 위치로 갔는데 막혀있는 출구였다. 다른 층으로 가야되나 싶어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갑자기 주차장이 나와서 당황했다. 이렇게 헤매다가 파리 공항을 둥글게 몇바퀴 돌았던 것 같다. 기사님한테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막 온다. “가는 중이에요”를 세 번이나 보냈다.


(우버 앱이 되게 잘되어있다. 직접 채팅을 치지 않고도 상황에 맞는 메시지를 바로 보낼 수 있도록 제안을 해준다. 당근 채팅 제안 같은 느낌. 메시지가 나한테는 한글로, 기사님에게는 프랑스어로 보인다.)
알고 보니 앱에 ‘픽업 위치로 가는 길’ 페이지가 있었다.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택시타는곳으로 가는 길이 상세히 나와있었다. 또다시 우버에 감탄했다. 우여곡절 끝에 밖으로 나왔다. 조금 기다리니 흑인 몸짱 아저씨가 조그만 SUV를 몰고 왔다. 타자마자 기사님이 공항 주차비용이 많이 비싸서 오래 있으면 돈 많이 내야된다고 계속 궁시렁거렸다. 내가 출구를 못찾아서 해멜 동안 택시도 공항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출발할 때 “웰컴투 패리스” 같은 인사를 해줬다. 파리의 첫인상이 매우 좋다.

파리에도 외곽순환도로가 있다. 도시가 오래되고 길도 촘촘하니 어딜 가더라도 외곽 타고 가는게 빠를듯. 공항에서 내려서 처음 호텔로 이동할때가 제일 설렌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모든게 다 새롭다. 택시는 기아 자동차지만. 왼쪽 저 멀리에 몽마르뜨 언덕과 그 성당이 보였다(쪼금 설렘). 고속도로에서 나오기 직전에는 저 멀리 에펠탑 꼬다리가 보였다(개설렘).
호텔은 15구에 위치해 있다. 공항에서 차로 50분 정도 거리에 있다. 호텔 이름에서도 나오지만 ‘파리 엑스포 드 베르사유’라고 컨벤션 센터가 있는 곳이다. 파리 올림픽 때 탁구나 핸드볼 등 경기장으로도 쓰였다고 함. 그래서 그런지 옛날 느낌은 거의 없이 길도 넓직하고 현대화된 건물이 많다.


호텔 건물이 귀엽게 생겼다. 네모네모 하나가 각 호실 하나. 중간에 튀어나온 방이 디럭스룸인 것 같다. 사진에 보이는 방향의 반대쪽이 에펠탑 뷰였다. 아. 로비 들어가기 전부터 많이 긴장했다. 미션이 두 개 있었다. 예약을 잘못해서 1박-3박 두 개로 나눠졌는데 — 에펠탑 뷰 방이 있다면 옮기지 않고 4박 내내 지낼 수 있는지, 만약 없다면 내일 기다려서 옮길 수 있는지. 일단 오늘은 에펠탑 뷰가 남는 방이 없다고 하는것 같는데. 더 얘기하다가 서로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그냥 처음 받은 방에서 4박 내내 있겠다고 했다. 다음에 올때는 진짜 듀오링고 열심히 해서 가야지.
방은 싱글 침대 하나에 캐리어 하나 바닥에 펼치면 가득 차는 크기였다. 좁았지만 깔끔하고 아늑해서 놓았다. 여덟시가 넘었는데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인상적이었다.


조금 쉬다가 밥먹으러 가는 길. 밤 여덟시가 넘었는데도 이렇게 밝았다. 도심에서 벗어난 주택가여서 막 ‘파리파리’한건 없었지만 느낌만이라도 좋았다. 집집마다 저녁을 먹고 있는건지,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말소리도 들렸다. 그게 되게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여행 온게 확 실감이 났다.
택시에서 계속 호텔 근처 식당을 찾아봤었다. 로컬이지만 여행의 첫 끼 타이틀에 걸맞는 음식을 찾고 싶었다. 구글맵 열심히 봤는데, le, la, les(르, 라, 레)로 시작하는 웬만한 음식점들이 파는게 다 똑같다. 이름이 프랑스어로 되어있으니 당연히 프랑스음식을 판다 — 이런 느낌. 호텔에서 걸어서 15분정도 걸리는 곳으로 찾았다. 직원이 영어를 잘 못한다(로컬 식당 합격).


Le Pentagone.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와 비프비프 타르타르. 각각 8.9유로, 16.9유로해서 맥주까지 총 52000원 나왔다. 카드 긁고 깜짝 놀랐다. 첫 끼는 간단하게 먹으려 했는데.

캠 앵글 잡는게 어렵다. 설정을 어떻게 해도 광각 느낌이 잘 안사라지는 느낌. 이상하게 생긴 집게를 같이 준다. 집게로 껍질을 잡고 포크같은거로 속살을 쏙 빼서 먹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달팽이를 어떻게 잡는지 몰라서 낑낑댔다. 팡 하고 튀어서 그릇과 식탁에 소스가 엄청 튀었다. 그래도 첫 입 겨우 먹고 나서는 적응해서 한번에 곧잘 했다. 맛은 생각보다 엄청 괜찮았다. 인터넷에선 골뱅이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는데, 난 원래 골뱅이를 안 먹거든. 비린 느낌도 별로 없었고 바질이랑 기름 향이 뜨겁게 확 올라오는게 아주 맛있었다. 타르타르와 감자튀김은 그냥 아는 맛. 가장 무서운 맛.
이 때까지는 열심히 찍어보겠다고 카메라 보고 몇마디 하면서 먹었는데, 영상 보니까 못 쓰겠다. 맥주 저 조그만 잔으로 몇 모금 마시니까 취기가 올라온다. 아. 기분이 엄청 좋았다. 야외 테라스 자리에 앉아서 길거리를 보며 먹었다. 조금씩 노을이 지고 있고, 트램도 간간히 지나가고, 러닝하는 사람들도 있다.

숙소로 돌아가며 마트를 들렀다. 까르푸 시티라는 마트가 여기저기 있었다. 미리 보고 온게 하나도 없어서 그런지 막상 살 만한건 별로 없었다. 내일 걸어다니면서 먹을 생수와, 어디서 들은건 있어가지고 납작복숭아도 샀다.

다시 걸어 호텔로 도착했다. 아직도 해가 지지 않았다. 이렇게 파리 1일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