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토요일 아침
오늘은 아침부터 (거의 유일하게) 정해진 일정이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입장권을 미리 예매해 놓았다. 오전 9시 오픈런 타임. 한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멋드러진 크루아상과 라떼로 하루를 시작하는 계획이었다. 출근 준비하는것처럼 꾸역꾸역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갔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단박에 기분이 좋아졌다. 구글 맵 보고 근처 버스정류장까지 5분 정도 걸었다. 버스정류장이 신기하게 생겼다. 아날로그 전광판이 있다.

10분 정도 멍하니 기다리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교통카드가 없다. 분명히 나비고 카드 어쩌구 하는 블로그를 엄청 열심히 보고왔는데,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ㅋㅋ). 급하게 검색해서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갔다. 10분정도 걸었다. 이 때 시간이 7시 40분쯤 됐는데 −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아침에 햇빛 쬐며 걷는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너무 좋았다.

이 때 너무 긴장했다. 파리 지하철의 악명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가. 어두컴컴한 굴을 따라 쭈욱 내려가는 동안 카메라도 휴대폰도 가방에 넣고 지퍼까지 잠그고 키오스크까지 직진했다. 어쩐지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휴대폰 없이 (대충 언어 - 영어 선택해서) 호다닥 카드를 뽑은 부작용이 있었다. 블로그에서 “이거 절대 사면 안됩니다” 했던 요금으로 샀다. 블로그들에서는 주간권을 제일 추천하는데 − 그건 언제 구매하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 카드였고 − 나는 파리에서 토일월 있는 일정이라 주간권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paris-visite 3일권을 샀다. 등 뒤에서 왔다갔다 하는 흑인들도 무서웠고, 가격도 유로로 나와서 아무생각없이 긁었다. 토스에서 원화로 결제된 금액 보니까 기절초풍.

역사적인 파리의 첫 지하철. 역시 사진 한장도 못찍었다. 지하철을 타고 조금 도심으로 들어와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출구로 나와서 파리의 구시가지 같은 거리를 처음 봤다. 웬만한 가게의 셔터도 다 내려가있고 거리에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여행 온게 실감이 났다. 심지어 진짜 “파리”바게트도 있었다. 몽파르나스 파리 5호점. 일산마두역점에 비하면 많이 작지만 노란 조명과 우드톤 인테리어에 5점 드립니다.
버스 컨디션은 지하철에 비해 깔끔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여행 유튜브에 미련이 있었어서) 카메라도 좀 들고 혼잣말도 좀 하고 싶었지만, 바로 뒷자리에 여행온 모자가 한국말을 열심히 하고있어서 실패했다. 열심히 창 밖 구경하면서 갔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다리 건너면 루브르 박물관이 나온다. 다리를 건넌 건지, 건물 밑을 지난건지 헷갈려서 구글맵 로드뷰를 켜서 보는데 둘 다였다. 건물이 성벽처럼 일 자로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에 길이 아치로 뚫려 있다. 아치를 지나면 넓은 광장 오른쪽에 피라미드가 나온다. 딱 이 장면을 유튜브에서 봤었다. 완전 기대하던 그대로였다.
광장을 지나서 바로 버스에서 내렸다. 아 햇빛이 너무 좋았다. 시간이 여덟시 반쯤이었다. 오픈이 30분 남았다. 광장 주위를 돌아봤는데 이렇다할 카페가 안보였다. 관광지 주변에서 맛집을 찾겠다고 하는게 아녔는데. 그냥 공복으로 다니기로 하고 피라미드 앞에서 줄을 섰다.


영상에서 아무리 캡쳐해도 죄다 바보같은 표정. 줄은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9시에 입장 시작하고 거의 5분만에 들어갔나. 보안검색을 하고 들어간다. 투명 피라미드 아래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지하에 광장 같은게 나온다. 귀여운 아보카도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앞에 있었다. 인포에서 한국어로 된 안내지를 집어들고 모나리자 사진이 크게 붙어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바로 모나리자부터 봐야지 하고 심호흡하고 들어갔다. “관람 동선이 중요해요” 같은 유튜브를 몇개 봤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모나리자까지 몇미터 간격으로 모나리자로 가는 길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안내판만 보고 직진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줄 하나 안 기다리고 1열에서 볼 수 있었다. 오픈런의 힘이란. 그림에 감흥은 1도 없었다. 나중에 박물관에서 나갈 때 다시 보니 사람이 정말 많아졌다. 이때 엄청 뿌듯했다.




비너스와 승리의 여신 같은 조각상도 보았다. 감흥이 별로 없었다. 민중의 어쩌구도 봤다. 오 이게 비바 라 비다 그 그림이군 − 하면서 그림 앞에 조금 더 앉아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서 이집트관도 조금 둘러보고 나왔다.
다음에 올때는 한국어 도슨트나 투어 같은걸 예약해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 모르니까 재미가 없더라 (몰래몰래 다른 투어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훔쳐듣긴 했지만). 하나 핑계대자면 배가 고픈게 패착이었다. 버스 기다리기 전에 파리바게트라도 들를걸 그랬다. 그렇지만 모나리자를 본 사람만이 ‘모나리자 별거없다’ 라는 말을 할 자격을 갖는다. 우하하. 모나리자 별거 없다.
점심
배고파서 가까운 빵집을 찾아갔다. 구글맵에서 평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초코 에끌레어를 하나 샀다. 튈르리 공원으로 찾아갔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이 글에서 날씨 좋다는 말을 몇번이나 할지 모르겠다.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니까 기분이 좋았다. 마샬 메이저5를 꺼내서 귀에 얹어보았다. 꼴깝인거 나도 아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ㅋㅋ). 유튜브에서 본 초록의자와 동그란 분수를 찾아갔다.

그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철제지만 등이 뒤로 누워 있어 매우 편하다. 빵을 한입 먹었다. 엄청 맛있다. 같은 맛을 한국에서 먹었어도 똑같은 반응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진짜 맛있었다. 안에 초코 크림이 가득 들어있다. 한입 크게 물고 미지근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 마시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날씨 좋다는 말과 기분 좋다는 말 이제 압수.
파리에서 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죄다 미지근했다. 이전에 롯데리아에서 아메리카노를 HOT으로 잘못 주문해서 얼음 넣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딱 그 때 먹었던 커피 느낌이었다.

마법같은 초록과 동그란 분수. 벤치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이런저런 걸 찍었다. 벤치 끝에 앉아있는 아줌마와 눈이 계속 마주쳐서 뻘쭘했다. 지금보니 너무나 완벽한 앵글이다. 자리 잡고 앉는 보라색 치마 할머니, 내 앞뒤로 지나가는 운동하는 사람들, 분수 뒤쪽에 나무들과 그 뒤에 에펠탑까지! 파리에 있을 동안 이곳을 한 번 더 들르지 않은게 약간 후회될 정도였다.
어제 택시에서 봤을때처럼 여기서도 에펠탑 꼬다리만 보였다. 멀리 떠있는 무지개 보듯이 에펠탑을 보게 된다. 멀리서부터 에펠탑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 장면 장면을 기대하면서, 여기서는 에펠탑 꼬다리만 보고 간다는 마인드.


궁상 좀 떨다가 예약해둔 식당으로 갔다. 여행 가기전에 뭐라도 해야되지 않나 싶어서 하나 예약한 곳이다. 위치가 좋다. 튈르리 공원에서 다리만 하나 건너서 3분정도 가면 바로 나온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여기저기 많았다. 일단 내 시야에 있는 손님들은 다 한국인이었음.
식당에 들어가면 테라스 혹은 실내 어느 자리가 좋은지 물어본다. 순간 정말 애매했다. 차가 다니는 바깥에 앉기는 싫은데 그래도 야외 느낌을 내면서 먹고는 싶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영어로 표현하냐 였는데, 초급 어휘로 이러쿵 저러쿵하니 딱 마음에 드는 자리로 나를 데려갔다.


고개를 들면 바로 옆에 바깥이 보이는 실내 테이블. 점원은 내 말 중 “inside” 하나 알아들은것 같지만 마음이 통했나보다. 오리스테이크, 어니언수프, 콜라를 주문했다.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맛있었다.

어니언수프를 처음 먹어봤다. 짠건지 단건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맛이었다. 식전빵으로 나온걸 찍어서 먹으면 맛있다. 오리스테이크는 살짝 실망이었다. 소스는 예상 가능한 맛이었는데, 고기는 살짝 식으니 바로 질기게 느껴졌다. 같이 나온 감자 무스는 맛있었다. 단순 무스가 아니라 크레이프처럼 겹겹이 깔려있는 감자를 구웠다. 가운데 있는건 익힌 배 같았는데, 한입 물고 말았다. 뜨거운 파인애플을 먹는 느낌이었다. 콜라 없으면 아무것도 못먹겠다. 유럽에 있는 동안 거의 모든 끼니에 콜라가 함께 했다.
대략 8만원 나왔다. Les Antiquaires. 이름부터 그냥 프랑스잖아. 프랑스식 식사라는 개념을 돈 주고 산거다. 이미 유명한 가게이지만 내 점수는 3/5. 굳이 예약하고 줄서서 기다리면서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뿐만 아니라 파리 어디 유명한 곳을 가나 길가다 끌리는 곳으로 들어가나 큰 차이는 없겠다.

오르세 미술관 가는 길. 식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밖에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동선을 짰을 것 같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오랑주리 미술관이 모두 가까이 모여있다. 오랑주리도 고민했지만 수련 연작 원툴이라 들어서 패스했다.
스팟과 스팟 사이를 걸어서 이동할 때가 또 다른 여행의 포인트다. 카메라를 들고 다녀서 그런지, 걸을때도 그냥 다니는게 아니라 눈앞의 모든것에 괜히 호들갑 떨면서 다니게 된다. 나홀로 여행이라면 액션캠을 매우 추천합니다.
아까 밥먹으러 갈때 다리에서 보았던 건물이 오르세 미술관 건물이었다. 운 좋게도 줄이 하나도 없었다. 오랑주리 입장권도 함께 살 수 있는 콤보가 있었다. 고민하다가 오르세만 들어가기로 했다.
(오르세에서 찍은 사진들 4개)
루브르 박물관보다 재미있었다. 아는 작품이 조금 더 많아서 그런듯. (어디서 들어본) 모네와 고흐의 작품 위주로 봤다. 모네 그림이 맘에 들었다. 오랑주리 콤보 티켓을 끊을 걸 그랬다.

오르세 오면 반드시 찍어야 한다는 역광 시계탑 사진. 굳이 어딘지 찾아가지 않더라고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바로 알 수 있었다.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도 없었다. 5분정도 서성거렸지만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나 붙잡고 찍어달라했다. 기대 안했지만 나름 성공이었다.
기념품샵을 들렀다. 엽서, 수첩, 마그넷 등등 샀다. 선물하기 좋은 것들이 많았다. 밖으로 나왔더니 그새 줄이 엄청 길어졌다! 모나리자 때와 같은 쾌감이 있었다. 역시 사람은 부지런하고 봐야 해. 건물 앞 광장에는 버스킹이 있었다. 햇빛도 너무 좋아서 10분정도 앉아서 듣다 갔다. 어떤 영화의 인트로 장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에펠탑
음악이 좋은것도 있었지만 이제 뭐할지 모르겠어서 앉아있던 것도 있다. 유튜브에서 보고 온 카페를 가보기로 했다. 엄청 꾸덕한 핫초코에 크루아상을 먹는 영상이었는데,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핫초코를 먹는걸 꼭 해보고 싶었다. 지금 보니 생각보다 관광지 코스를 많이 들렀다.
버스를 탔다. 강을 따라 쭉 가다가 트로카데로 광장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광장 앞 엄청 큰 로터리에 바로 붙어있다. Carette. 여기는 진짜 유명한 곳 같다. 구글맵에도 한국어로 된 리뷰가 정말 많다 (좋은 말은 별로 없다). 웨이팅이 꽤나 있었다. 줄을 설까 말까 고민하다가 딱히 다른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서있었다. 꼭 야외 테이블이 아니어도 된다면 보기보다 빨리 앉을 수 있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이 앤 해서웨이랑 진짜 똑같이 생겼다. 여행하면서 사람 보고 눈 돌아간 적 진짜 한번도 없었는데. 히히)

크루아상과 핫초코를 주문했다. 크루아상이 다 나갔다고 했다. 프랑스인데, 그것도 파리 한복판인데 크루아상이 없을 수 가 있나. 그냥 비슷한거 아무거나 추천해달라고 했다. 난 그냥 추천하는 빵 이름을 듣고 싶었는데, 직원이 그냥 OK 하고 슥 메뉴판 가져가더니 사라졌다.
크루아상 대신 온건 애플파이였다. 그냥 뺑 오 쇼콜라 달라고 할걸. 방금 밥먹어서 배불렀는데 애플파이는 별로 손이 안갔다. 대망의 핫초코. 작은 잔과, 스뎅 주전자, 생크림을 따로 준다. 처음 서빙할 때만 잔에 따라준다. 핫초코는 맛있었다. 엄청 핫은 아니었지만 찐득하고 좋았다. 생크림을 넣어서 녹여서 먹으니 폭신한 느낌. 애플파이는 절반 정도 먹고 포장해서 나왔다.
언젠가 릴스에서 본 오렌지 착즙 주스를 찾아나섰다. 까르푸 같은 마트마다 오렌지 짜는 기계가 있다고 그랬는데, 근처 두세군데 가봤는데도 없었다. 그냥 에펠탑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로터리에서 반대편으로 가면 바로 트라카데로 광장이 나온다.
광장이 철조망으로 막혀있었다. 저 앞에 에펠탑이 바로 보이는데 가지를 못한다니. 철창 너머로 열시미 기웃대고 사진도 몇장 찍다가 무작정 오른쪽 길 따라 걷기로 했다. 가다보면 에펠탑으로 가지겠지.


길 왼쪽 건물 사이에 공간에 사람들이 꽤 있길래 들어가봤다. 알고보니 인스타에서 많이 유명한 뷰포인트였다! 왔는데! 결국 “아는 사람만 아는 어쩌구..”로 시작하는 릴스 있잖아. 관광객들도 있었지만 더플백(캐리어였을지도)에 옷가지들 바리바리 싸와서 앞에 조명두고 사진찍는 모델도 있었다. 파리에서 본 진짜 파리지앵이었다. 멋있었다. 사람도 사람이었지만, 그 위치에서 본 에펠탑이 진짜 이뻤다. 빼곡한 나무들 위로 에펠탑이 올라와있다. 혼자 사진 몇개 찍어봤지만 셀카로는 앵글이 시원찮았다. 아쉽군.

난간에서 포스를 풍기는 모델에 가려져서 몰랐는데, 그 난간 옆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 내려가서 에펠탑 보고 쭉 걸으면 에펠탑 방향으로 강을 건너갈 수 있는 이에나 다리가 나온다.

강으로 가는 그 짧은 길에도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산책하다가 자꾸 멈춰서 냄새 맡는 강아지의 심정을 알겠는 것이, 가는 길에 자꾸 멈추고 싶은 곳이 많았다! 계단을 내려와 골목길을 지나서 언덕을 따라 쭉 내려가면 언덕길 내리막과 풀밭이 나온다.
와 거기 잔디에 사람들이 돗자리 깔고 누워있는데 진짜 나도 눕고 싶어서 미치는줄 알았다. 노부부도 있고, 학교 째고 나온거같은 중고딩들도 있고 − 지금 생각해보니 주말이었다. 괜히 부러워했네 − 나도 결국 누워버렸다. 아까 계단 위에서 본 빼곡한 나무들이 여기 풀밭에 있는 나무들이었다. 하늘 보고 누우니 에펠탑 꼭대기다 더 뾰족하게 보인다. 얼른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

(여름이지만) 김현철의 ‘봄이 와’ 아니면 페퍼톤스의 ‘뉴히피제너레이션’ 같은 노래가 잘어울린다.
강북에서부터 에펠탑까지 오는 경로를 선택한 친구들에게는 내가 지나갔던 길을 그대로 꼭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눈 앞에 지나가는 풍경만으로도 엄청난 행복이다. 촬영본 내내 입이 귀에 걸려 있다 (너무 추해서 미방분). 트라카데로 광장에서 에펠탑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임팩트가 컸다.
겨우 발걸음을 옮겨 이에나 다리까지 왔다. 그 다리도 못건너게 막아놨다. 월요일에 있을 바스티유 데이 행사 때문인 것 같다. 왼쪽으로 빙 돌아서 다음에 있는 다리로 건너기로 했다. 에펠탑 모형과 마그넷을 파는 흑인들이 많이 보인다. 강가 오른쪽에 부두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서 내려가봤다. 여기도 만만치 않은 에펠탑 뷰포인트이다. 내가 유튜브를 했다면 “아는 사람만 아는 -” 으로 새로운 쇼츠를 만들어서 올렸을거야.

꽤나 많이 걸었다. 돌아서 건너게 된 다리에서 즉석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을 만났다. 운이 좋고 행복한 하루다. 사진도 아주 마음에 든다! 팁을 주고 싶었는데, 가지고 있는 현금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가 10유로였다. 잠깐 고민을 해버렸다. 재생펄프 종이 흑백 감성사진 세장에 17000원은 많이 아까웠지만.. 막 지갑 꺼내는 척 했다가 그냥 가는게 좀 그래서 그냥 10유로 넣고 왔다. 현금 쓸 일도 없었고 마음이 한결 편하다.

다리를 건너면 거의 다 온거다! 에펠탑 앞 공원도 가운데 메인 잔디밭은 막혀 있었다. 오른쪽 잔디밭에 돗자리를 폈다.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삼십분 정도 누워있었다. 혼자 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지만.
사실 여기서의 기억이 별로 없다. 진짜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었나봄. 원래 상상했던 건 맛있는 빵과 와인을 사와서 느낌있게 피크닉하는 모습이었는데 − 애플파이와 핫초코는 아직도 소화가 안됐고, 여행 중엔 와인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건 전날 밤, 맥주 두 모금에 머리가 지끈거린 걸로 이미 깨달았다.
그래도 눈 앞에 에펠탑이 거대하게 있는데, 그 앞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는거 자체가 벅차긴 했다.

호텔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버스가 20분을 기다려도 안왔다. 여기 있는동안 버스가 제대로 오는 걸 본적이 없다. 버스 노선이 (또 내일모레 축제 때문에) 바뀌었다고 구글맵에 나와있다. 5분 정도 걸어서 다른 정류장으로 갔는데, 거기도 버스가 계속 안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전기자전거를 빌렸다. 우버에서 빌릴 수 있다. 여행 준비하면서도 그냥 자전거(벨리브)를 빌려서 하루종일 다니는 계획을 세웠지만, 뭔가 복잡하고 돈 못돌려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패스했었다. 조금 아쉬웠는데 버스가 안오는 덕분에 이렇게 타보네.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자전거 길이 너무 잘되어있다. 에펠탑 앞에서 숙소까지 거의 대부분의 도로 끝에 자전거길이 있어서 편하게 왔다.



- 속도감이 느껴지는 사진. 앞에 전동킥보드를 타는 친구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속도를 붙였다.
- 파리올림픽때 자전거도로를 싹 재정비한 것 같다. 길에 노숙자나 팔찌 강매하는 사람도 안보이고, 올림픽 이후에 와서 너무 좋다 라는 생각을 했다.
- 다시 한번 말하는 ‘건물 모서리에 있는 식당’.

해가 조금씩 넘어갈락말락 할 때 자전거를 타고 파리 도로를 달릴 수 있다는게 너무 좋았다. 신기하게 에펠탑 근처에서 변두리로 내려갈수록 건물들이 높아지고 도로가 넓어졌다. 우리나라 공유자전거처럼 핸드폰 거치대가 달려있거나 하지는 않아서, 에어팟을 귀에 꽂고 네비게이션 안내를 귀로만 들으면서 달렸다. 게임하는것 같고 재밌었음. 25분 정도 걸렸다.

걸어 잠근 창문 속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open the door, 햇빛 bless you
글을 쓰면서 악뮤의 “햇빛 bless you” 라는 노래를 들었다. 며칠전 그민페에서 처음 라이브로 접한 기분 좋은 노래. 문을 여니 이런 좋은 세상이 있네요.
Oh 아무것도 안해도 땀 흘릴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요 − 이 가사가 유독 마음에 든다. 평소 외출 전날 밤마다 항히스타민제를 먹고 자야 하는데, 한여름 유럽 여행 중엔 약을 안 먹어도 하루 종일 멀쩡했다. 혹시 이찬혁도 콜린성 알레르기가 있나.
아니 근데 파리의 하늘은 진짜 다르다. (최근에 차원달라 밈을 새로 배웠다) 어쨌든 이렇게 2일차 끝.